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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판전
시맨틱 에러, 인공지능처럼 사랑하자 본문
이 글에서 소개하는 드라마의 극장판 〈시맨틱 에러: 더 무비〉가 절찬 상영 중입니다. 지금 바로 예매하세요.
전날 도착한 대본집과 함께 왓챠(WATCHA) 오리지널 드라마 〈시맨틱 에러(SEMANTIC ERROR)〉를 16번째 정주행하던 나는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대본에 붙어있는 “소품, 『AI의 이해』”라는 감독님 디렉션과, 실제 드라마 상에서 자고 있는 재영(박서함 분)의 앞에 놓인 같은 제목의 책을 확인하고 나서였다. 자신과는 여러모로 정반대 캐릭터인 상우(박재찬 분)를 이해하려는 재영의 노력을 보여주는 장치일 것이다. 이렇게 여러 상징을 활용한 감독의 섬세한 연출, 두 배우의 성실하고 천재적인 연기, 나아가서는 BL이라는 장르의 오늘과 내일까지 이 사랑스러운 드라마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정말 많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상우는 정말 인공지능(AI) 같은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하여, 인공지능 다움이란 무엇이고, 그것이 퀴어함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1
질문에 답부터 하자면, 상우는 인공지능 같지 않다. 적어도 이 시점(4화)까지는. 일례로 다음과 같은 상우의 대사를 보자.
컴퓨터도 사람이랑 똑같아요. 온갖 잡다한 쓰레기들 안 버리고 품고 있으면 제대로 굴러가겠어요? 효율성만 떨어지지.
상우는 효율성을 중시하고, 주어진 상황에 정해진 답을 낸다는 점에서 고전적인 의미의 기계 같은 캐릭터다. 또, 사회적인 맥락을 잘 읽지 못해 농담이나 수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말뜻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흔히 ‘기계 같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로봇 같다, 인조인간 같다, 인공지능 같다 등의 표현들을 명확한 기준 없이 혼용하곤 한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소품쯤이야 그러한 혼용의 하나로 넓게 이해하고 넘어갈 법도 하다.
그러나 6화에 이르러 상우가 정말로 ‘인공지능’ 같아짐으로써 이 표현은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현대 인공지능의 핵심은 기계가 학습한다(machine learning)는 개념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상우가 재영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재영이 좋아할만한 행동(형이라고 부른다, 머리를 쓰다듬는다 등)을 학습하여 어색하게 재연하는 장면들이 바로 상우의 인공지능 다움을 보여준다. 그동안 외면해왔던 ‘온갖 잡다한 쓰레기들’을 하나하나 수집하고, 학습해서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낸 것이다. 여기서 ‘어색함’이 핵심인데, 기계의 학습이란 인간의 그것과 달라서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묘하게 핀트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컴퓨터의 아버지이자 인공지능 개념을 정초한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 1912 ~ 1954)은 「계산 기계와 지능(Computing Machinary and Intelligence, 1950)」이라는 논문에서 오늘날 튜링 테스트라고 불리는 ‘흉내 게임(imitation game)’의 개념을 제안했다.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모호한 질문 대신, 질문자가 인간과 기계를 질문과 답변만으로 구별해낼 수 없게끔 하는 기계가 가능한지 묻자는 것이었다. 2
이러한 흉내 내기의 어색함과 그것을 포착하기 위한 테스트는 성소수자들에게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튜링의 전기를 영화화한 〈이미테이션 게임(2014)〉은 영화 전체가 하나의 흉내 게임을 이루는데, 여기서 튜링(베네딕트 컴버배치 분)은 동성애 혐의로 자신을 취조하는 경찰에게 일생 이야기를 들려준 뒤, 다음과 같이 묻는다.
난 뭡니까? 나는 기계인가요, 사람인가요? 전쟁영웅인가요, 범죄자인가요?
말의 내용뿐만 아니라 말투, 시선 처리, 제스처 등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규범에 의지하는지는 매순간 규범에서 탈락하는 사람만이 알아차릴 수 있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들키지 않기 위해 남들의 행동을 학습해서 흉내 내는 스스로를 보고 소시오패스가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성소수자들은 일생에 걸쳐 자신에게 부자연스러운 규범을 학습하고, 규범인의 삶을 연기한다는 점에서 ‘인공지능’ 같다. 그러나 수동적인 의미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성소수자들은 다른 한편으로 규범과 불화하고, 커뮤니티로부터 학습하여 새로운 규범을 창조해낸다는 점에서도 ‘인공지능’ 같다.
푸코의 전기 작가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Didier Eribon, 1953 ~)은 자전적 에세이 『랭스로 되돌아가다』에서, 어린 시절 “‘정상인들의 세계’에 속해 있음을 확인하고 그 세계로부터 배제될 위험을 피해야 한다는 저항할 수 없는 욕망” 때문에 동성애자에 대한 욕설을 더 자주 사용했다고 고백하며, “나는 나 자신을 주변 사람들과 다르게 발명하지 않고서는 내가 되어가고 있던 존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3
〈시맨틱 에러〉의 주된 갈등은 ‘기계 같은’ 상우에게 입력된 잘못된 규칙, 즉 연애란 “한 쌍의 남녀가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일”이라는 정의에서 비롯한다. 재영이라는 ‘시맨틱 에러’와 레즈비언인 유나(송지오 분)로부터 학습한 ‘인공지능’ 상우는, 마침내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내고 재영과의 연애를 시작한다. 서로로부터 배우고 맞춰나가며 사랑을 계속하는 두 사람의 미래를 상상해 본다. 남들과는 조금 다르겠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인간적일 것이다. 4
기계적이다, 인공지능 같다는 말은 흔히 인간적이라는 말과 반대되는 표현처럼 사용된다. 그러나 〈시맨틱 에러〉의 상우와 잘못된 규칙을 만들어낸 우리 사회의 규범을 비교해봤을 때, 어느 쪽이 더 ‘인간적인’ 지는 대답하기 쉽지 않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대답을 만들어가야 하는 종류의 질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상우처럼 사랑하자. 인공지능처럼 사랑하자. 규범을 부수자. 새로운 규범을 창조하자. 그로써, 인간다움을 새롭게 정의하자. 그러면 우리를 괴롭히던 혼란이 없어질지도 모르니까. 재영의 말처럼.
상우야. 피하지 말고, 무시하지도 말고, 그냥 느껴봐. 그럼 널 괴롭히던 혼란이 없어질지도 모르잖아.
- 제이선, 『시맨틱 에러 대본집』, 블랙디, 2022, 146쪽. [본문으로]
- 앨런 튜링, 노승영 역, 「계산 기계와 지능」, 『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 도서출판 어떤책, 2019, 67-68쪽. [본문으로]
- 디디에 에리봉, 이상길 역, 『랭스로 되돌아가다』, 문학과지성사, 2021, 227-228쪽. [본문으로]
- 노이슬, "[인터뷰②] '시맨틱 에러' 감독 "에필로그 키스씬, 박서함-박재찬이 제안"", 스포츠W, 2022년 3월 11일, https://www.sportsw.kr/news/newsview.php?ncode=106555290349517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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